이번 페어에서 나를 좋아하는 확실한 취향의 고객들을 만났어. 스노우보드나, 바이크 같은 비주류 취미를 가지고 있거나, 디자인 전공자 같은 예술 관련 사람들이었지. 그래픽 디자인 전공을 하던 한 학생은 내 브랜드를 보고 쌈뽕 하다고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 줄 몰라서 씨@봉바거 당황했지.
디자인하던 친구들이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부분이 있었어. 난 사실 '이걸'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확하게 포인트를 찍으며 날 선 질문을 던졌지. 근래 젊은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실망하고 있었는데 조금 감동이었어. 그래서 오늘 내 캐릭터의 비밀스러운 설정을 조금 풀어보려고.
언제나 마지막에 이야기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흘려들었으면 좋겠어. 결과를 향한 과정에 정답은 없고 사람마다 방법이 틀리니 '이런 사람도 있구나' 편하게 생각해 줘.
🎲심화과정
멋진 그림, 귀여운 그림, 잘 그린 그림, 세상엔 좋은 그림이 정말 많아. 셔터스톡이나 게티이미지에 좋은 그림과 디자인 소스는 차고 넘치지. 아이패드로 감정을 쏟아낸 그림들이 SNS에 쏟아지고, AI로 생성된 이미지가 온 미디어에 사용되고 있어. 디자인 툴은 사용이 더 쉬워져 누구나 디자이너라고 말하고 다니지.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시장에 많은 사람이 유입되고 그들이 찍어내는 1차원적 생각의 미디어들이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미친 듯 업로드되고 있어.
너무 많이, 쉽게 생산되는 이미지들 사이에서 난 어떻게 특별해야 할까? 저 사람은 뭐가 다를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연구, 공부하면서 내 캐릭터를 만들었어. 그냥 따라 하기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다면 대만 카스테라처럼, 탕후루처럼 한 순간에 사라질 거야.
🎲배운게 도둑질
난 과거 건축잡지 편집 일을 했어. 책의 편집은 규칙이 있어. 장을 넘기는 호흡, 지루하지 않게 장마다 바뀌는 레이아웃, 삽화나 사진의 컬러 톤 등 아무도 눈치 못 채는 디테일이 숨어있지. 그중 사진의 간격을 맞추는 그리드를 일정하게 사용한다면 같은 책을 보고 있다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는 무의식 적인 생각을 가지게 돼.
과거 습관처럼 맞추던 그리드가 내 캐릭터에 적용되었고 외곽선과 내부선을 다른 비율로 만드는 규칙으로 정해졌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규칙으로 같은 캐릭터의 시리즈라는 무의식 적인 이해를 만들 거라 생각했어.
같은 시리즈로 인식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몇 개 더 있는데 하나는 구조의 비율이야. 눈, 눈썹, 코, 입, 귀의 그리드를 만들어서 통제했어. 완전 다른 콘셉트의 캐릭터가 아니라면 모두 이 규칙을 따라야 해. 지금 만들어진 콘셉트는 정면과 측면 두 가지가 있고 완전 다른 그리드를 가지고 있지.
또 다른 숨겨진 콘셉트는 세리프와 삑사리야. 활자를 만들 때 꾸며주는 장식이 있다면 세리프 서체라고 부르지. 난 타이포그래피 관점에서 내 캐릭터의 포인트를 주고 싶어서 한 번씩 튀겼고 그 부분을 세리프라 생각하지.
그리고 그래픽의 연결점을 끊어주는 삑사리 효과도 넣었어. 봉준호 감독 영화 중 중요한 장면에서 주인공들의 바보 같은 실수를 연출하는데, 관객들은 영화에 갑자기 더 집중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오지. 그래픽의 뜬금없는 끊어짐과 세리프가 내 캐릭터를 집중하게 만들 거라고 예상해 캐릭터마다 한틱?정도 연출해 주고 있어. 그리고 이 부분을 페어에서 만난 어린 디자이너들이 콕 집어 물어볼 때 미소를 감출 수 없었어. 그들의 반응에 일반 고객들도 무의식 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
별거 아닌 이런 규칙은 처음과 끝까지 같은 브랜드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줄거라 생각해. 사람들은 무의식 속에 패턴을 느끼고 안정감, 매력으로 느껴 기억에 각인시킬 거라는 생각을 하며 제작했어.
작은 규칙들은 작업에 활력을 줘. 규칙을 맞추기 위한 억압은 오히려 못 보던 그래픽으로 변화할 때가 많아. 여러 영역에서 지식을 배우고 너만의 그래픽 규칙으로 만들어봐.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이런 이야기를 자칭 디자이너, 작가라고 떠드는 친구에게 이야기해 준 적 있어. 그 친구의 답변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다 붙이면 다 맞는 말이죠'라고 했어. 알고 모르고의 차이. 이런 이야기를 듣기 위해 대학을 가고 유학을 가는데 말이야. 그와 대화는 거기서 끝이지.
아무튼 이번 주도 하찮은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너무 주관적인 이야기라 사실 너희가 재밌을지는 모르겠어. 의견 주면 조금씩 바꿔볼 게 메일이나 디엠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