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남은 날이면 혼자 보는 그래픽 작업을 끄적거렸지. 유튜브에 그래픽 작업 관련 검색을 하다 보니 알고리즘이 비슷한 채널을 추천해 주는데 반복적으로 Mo TV라는 채널의 영상이 눈에 띄었어. MTV를 따라한 귀여운 로고를 생각 없이 눌렀는데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봤어. 재밌었냐고? 아니 화났어. 내가 꿈꿔왔던 일, 원했던 삶이 그곳에 있었어. 영상을 보는 내내 나도 저거 할 수 있는데, 나도 해본 건데, 배운 건데.
회사에 불만도 많았지만 그건 큰 문제는 아니었고 나의 에너지와 재능이 시간에 녹아가는 게 화나고 아까웠어. 그러다 업무 중 반복적으로 사용한 오른손이 문제가 생겨서 한 달간 병가를 쓰게 됐고 영원히 고칠 수 없는 만성 질병이 돼버렸지. 몸으로 하는 업무의 한계를 느끼며 쉬는 한 달 동안 만들던 그래픽을 냉정하게 손 보며 고민했어. 지금 하는 일의 작은 고통을 영원히 느끼며 그저 그렇게 살 것인가, 엄청난 고통과 고독한 싸움으로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야 할까.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고 있겠지.
🎲MO BETTER WORKS
라인프렌즈에서 업무 했던 두 사람이 퇴사 후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Mo TV라는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어. ‘Small Work Big Money’, ‘as slow as possible’ 일을 좋아했던 그들은 업무에 관련된 가벼운 농담을 제품에 담고, 자유의 상징 ‘프리 버드’의 새를 모티브로 캐릭터를 만들었어. 모베러웍스는 디자이너와 마케터의 입소문을 시작으로 지금은 많은 회사원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그들이 일하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는 Mo TV는 비슷한 직군에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슈였어. 브랜드의 개념을 잡아가는 과정, 컬러 톤과 그래픽 스타일을 정하는 과정, 로고를 만드는 스케치 등 브랜드 디자인 회사의 업무 과정을 모두 보여주는데 정말 멋진 걸 만들고 즐거워 보이지. 일에 관련된 메시지를 던지는 브랜드라서 매년 노동절을 기념하는 유쾌한 마케팅, 팬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만들어. Mo TV를 보고 함께 하고 싶은, 같이 일 하고 싶은 팬들이 찾아올 명분을 만들었지.
지금 그들은 성수동에 주택을 구매해 작은 극장을 만들고 있어. 벽돌을 올리고 영사 자격증을 따고 그래픽을 만들어 인테리어와 소품까지 만들어. 극장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고 그 스토리를 유튜브에 공유해 팬들에게 광고하지. 본인들이 좋아하는 영화의 판권을 가져와 상영할 준비를 하면서 영화 주제 팟캐스트도 매주 진행 하고 있어. 비전문적인 영화 설명을 해주는데 듣다 보면 그들의 관점에서 다시 관람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어.
종잡을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은 엄청난 영감을 줘. 그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법도 멋지지만 나의 전공인 아이덴티티 분야의 그래픽 작업을 보면 깊이가 느껴져. 내가 예술을 버렸던 시간에 그들이 현업에서 채워왔던 차이가 분노로 다가와.
🎲지나간 일
늦은 건 늦은 거고 지금 이 업을 다시 시작했으니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지. K-일러스트레이션 페어가 2주 남았어. 제품은 최대한 일정에 꽉차게 맞춰서 만들어 많이 보여주기위해 노력했어. 공간 구성은 끝나서 소품을 이것저것 구매하고 있지. 이번 페어는 판매를 위한 이벤트가 아닌 홍보를 목적으로 하려고. 분명 내가 투자한 금액 회수를 못 할 거라 예상하고 주변 잘 나가는 작가와 비교하며 좌절하기보단 목적의 기준을 바꿔 투지를 불태우려고. 내 브랜드의 홍보와 인스타 팔로우를 올리기 위한 방향으로 기획했어. 사람들이 부스에 들어와 내 브랜드에 시간을 소비하고 즐기게 만들어 보려고.
다음 주와 페어가 진행되는 주까지 2주 동안 휴재를 하려고. 모든 에너지를 페어에 집중할 거야. 새해는 복 많이 받고 페어 끝나고 또 이야기해 볼게.
아무튼 이번 주도 하찮은 이야기 들어줘서 고마워! 너무 주관적인 이야기라 사실 너희가 재밌을지는 모르겠어. 의견 주면 조금씩 바꿔볼 게 메일이나 디엠 보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