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등학교는 홍대와 가까이 붙어있던 당산에 실업 고등학교였어. 디자인과로 졸업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난 외길 인생이군. 그때 언더그라운드 힙합 붐이 커지고 있었고 미디어에 노출된 뮤지션들이 힙합이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나. "힙합이란 음악, 그래피티, 댄스입니다."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던 게 생각나네. 그땐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문화였던 거 같아.
어느 순간부터 거리에 이상한 낙서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라카 스프레이로 급하게 쓰인 커다란 글자들. 어둡고 사람 발걸음이 많이 없는 공간엔 무조건 있었는데, 빨리 그리고 도망쳐야 하니 속도가 느껴지는 거친 선과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힘 가득 실린 싸인(태깅)이었어. 나중엔 더 빠르고 멋지게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도망갈 수 있는 스텐실(판화의 일종)과 스티커 같은 전략도 생겼지.
어린 나는 이런 걸 멋지게 느꼈어. 고등학생 때와 군대에서 그래피티 스타일의 작업물, 태깅을 만들어봤지만, 벽에 그리고 그러진 않았고 그 당시 만든 내 태깅은 지금도 싸인으로 사용하고 있지.
🤪날카로운 경계와 그래피티 아티스트 NANA
어느 순간부터 그래피티가 유치하게 느껴졌어. 대학생 때 그래피티 벽화로 꾸며진 술집 인테리어가 꽤 많을 정도로 인기 있었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려는 효과, 라카로 만드는 그라데이션, 미국 스타일 캐릭터 디자인, 이런 게 너무 옛날 느낌이야. 자신의 이름만 알리기 위해 하는 의미 없는 행위도 촌스럽다고 느껴졌어. 그래서 지금은 좋아하지 않고 몇몇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아직도 그런 스타일을 유지하던데 볼 때마다 오그라들어. 내 개인적인 생각이야.
하지만 올드한 스타일을 버리고 자신만의 멋진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 있어. 2010년 초반 홍대 거리는 "나나는 진짜야" 스티커와 스탠실이 가는 곳마다 있었는데 뭔가 다르게 느껴졌지. 그녀의 그래피티는 러프하게 그려진 하트에 알파벳 몇개, 그것들은 반복됬어. 멋 부리려고 힘 팍팍 준 그래피티보다 이런 게 좋았어. 간결하고 머릿속에 쉽게 각인되는 이미지. 밸런스 잡힌 조형미. 뉴스레터를 쓰려고 리서치하다 보니 아직도 활동하고 있어서 반가웠어. 그리고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고 느껴졌지.
그래피티 스타일 캐릭터는 정해져 있지만 나나는 자신만의 뭔가를 찾고 있어 보여. 그리고 좋음과 나쁨의 날카로운 경계에 걸려있어.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찐따와 간지는 한 끗 차이"라는 말이야. 이건 패션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진짜 난해한 패션을 소화하는 젊은 친구들이 있지. 옷 같지 않은 옷을 입고 '난 멋있어' 라고 말하는 자신감. 공간의 분위기, 사람의 체형, 자신의 매력까지 패션의 일부로 만들어서 간지가 나지만 조금만 잘 못하면 찐따가 되어 버리는데, 이 사이의 경계가 좁을수록 난 멋있게 느껴.